[데일리전남] 1908년 겨울, 전남 영광 불갑산 자락에서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가 포획됐다. 몸길이 160cm, 무게 180kg의 암컷 호랑이였다. 당시 포획자는 이 호랑이를 일본인 부호 하라구치에게 200원에 팔았다. 200원은 당시 논 50마지기를 살 수 있는 거액, 오늘날 수억 원에 해당하는 가치였다. 하지만 그 돈은 잠시였고, 호랑이는 영원히 고향을 떠나야 했다.

하라구치는 이 호랑이를 일본으로 가져가 박제로 만들었고, 1909년 목포 심상소학교(현 유달초)에 기증했다. 117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는 영광이 아닌 목포의 한 초등학교 유리 진열장 안에서 백화현상으로 희게 변한 채 서 있다. 털은 빛을 잃었고, 날카롭던 눈빛도 사라졌다. 관리 상태도 완벽하다고 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그 표본은 ‘한반도 야생의 종언’과 ‘일제강점기의 생태 수탈’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영광군은 2015년 유달초에 호랑이 귀환을 공식 요청했지만, 학교 측은 거절했다. 동문회는 호랑이가 학교의 상징이며, 오랜 세월 함께해온 정서적 자산이라 주장했다. 법적 소유권 이전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마음의 소유권’이 귀향의 가장 큰 벽이 된 것이다. 더구나 문화재 지정조차 되지 않아 강제할 방법도 없다.

목포 유달초등학교 유리 진열장 속에 전시된 영광 불갑산 호랑이 박제. 날카로운 이빨과 눈빛이 포효를 연상케 한다. /사진:전남교육청 제공

영광 불갑산 호랑이가 고향에 돌아오는 일은 단순한 표본 이전이 아니다. 이는 역사와 문화, 정체성 회복의 문제다. 귀향한다면 ‘불갑산 호랑이 기념관’의 핵심 전시품이 될 수 있고, 멸종과 보존, 식민지 수탈의 역사를 생생하게 교육할 수 있다. 국내 유일 조선호랑이 실물 표본은 학술 가치가 높고, 기념관 개관 시 연간 30~50만 명 관광객 유치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식민지 시절 약탈된 문화재와 표본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프랑스가 베냉에 왕실 보물을, 독일이 나미비아에 인골을 반환한 것처럼, 불갑산 호랑이도 ‘역사 정의 회복’의 흐름 속에 귀향 논의가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문화재청·교육청·지자체가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 표본의 천연기념물 등록, 보존 환경 확보, 유달초 동문회와의 장기적 협상 및 상징성 보전 방안 마련을 제안한다.

117년 전, 불갑산 능선을 울리던 맹수는 지금도 좁은 유리관 속에 갇혀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왜 아직도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가” 하고 묻는 듯하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다. 귀향의 길은 긴 시간과 설득을 필요로 하겠지만, 그날이 온다면 멈춰 있던 역사가 마침내 완성될 것이다.